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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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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일 | 2020-0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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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사건들은 단 하나의 이유로 설명될 수 없는 다층적인 구도를 품는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정작 우리 앞에 어떤 사건이 다가오게 된다면 신중한 접근이 쉽지 않다. 하나의 사건을 이루는 다양한 선분들을 낱낱이 파헤치는 일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무엇보다 뭔가에 맞닥뜨리게 되면 형언하기 힘든 감각적 반응이 먼저 앞서기 때문이다. 공부하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나 역시도 솔직히 그런 곤란 때문에 자의식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여성스럽다’는 표현을 튕겨내고 ‘너답다’ ‘매력 있다’는 말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안티-페미니즘 시각에서 재단되고 또 그런 맥락에서 다툼의 씨앗이 된다는 것은 참 애석한 일이다. 엠비시(MBC) 임현주 아나운서가 한 티브이(TV) 프로그램에서 “여성스러움”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게 왜 그렇게 논란거리가 되어야 하는 걸까. 사실 ‘여성스럽다’는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다. 거의 모두가 옹호하는 ‘성평등주의’라는 가치에 입각해 본다면 말이다.
‘어문규범’이라는 게 있다. 문법이나 어법과는 조금 다른데, 편하게 사회적인 언어 관습이라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어문규범이라는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여성스럽다’는 표현은 자연스럽게 쓰이지만 ‘여성답다’나 ‘여자답다’ 또는 ‘여자스럽다’라는 표현은 어딘가 어색하고 잘 쓰지도 않는다. 반대로 ‘남성스럽다’나 ‘남자스럽다’ 또는 ‘남성답다’는 표현은 어떤가. 이 역시 잘 쓰이지 않는 말들이다. 문법으로는 가능하지만 어문규범상으로는 어색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 대신 한국인들은 ‘남자답다’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그런 점에서 임현주 아나운서가 ‘여성스러움’이라는 언어나 가치를 부정한 것은 언어사회학적으로 꽤 뜻깊은 일이다. 어문규범이라는 것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문규범을 일종의 불문율로 지켜야 하는 아나운서로부터 제기된 문제니 극적이기까지 하다. 언젠가 몇몇 외국어와 달리 한국어에는 남성명사, 여성명사 같은 게 없어서 다행스럽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남자’와 ‘답다’가 만나고, ‘여성’과 ‘스럽다’가 만나는 언어 관습은 과연 성적으로 평등한 것인가.
알다시피 ‘답다’는 남자가 됐든 무엇이 됐든 거기에 부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영어로 치면 ‘be worthy of’에 해당한다. 반면에 ‘스럽다’는 여성이 됐든 무엇이 됐든 단순히 그런 성질이 있는 것 같다는 의미에 머문다. 영어로 치면 ‘be like’인 셈이다. 게다가 왜 또 하필 ‘남자’다움이고 ‘여성’스러움인 걸까. 구구절절 미심쩍은 것투성이다. 이런 질문들 자체가 한 편의 논문감일 정도로 우리는 이런 언어적 관행에 더 많은 해석과 쟁론을 가져갈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메시지를 공략할 수 없으면 메신저라도 공략해야 하는 것일까. 불행히도 인터넷 일부에서는 사려 깊은 토론보다는 임현주 아나운서에 대한 인격적 언급들이 주를 이루면서 자신들이 가진 안티-페미니즘 기조를 강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 자체가 징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성스럽다란 말 대신 (심지어 여자답다도 아니고) 너답다라는 말을 쓰자는 제안이 성별적으로 구성된 어문규범의 중핵 어딘가를 건드린 것 같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젠더 갈등으로 사회가 혼란스럽다고 피로감을 호소할 수도 있을 테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사이에 우리가 알던 젠더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작금에 이르는 후기 자본주의 국면에서, 남성-가부장주의가 현실적으로 성립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서 남자다움과 여성스러움으로 이뤄진 젠더 질서가 과연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혼란스럽고 불편하다면 그것은 불가피한 혼란이고 당연한 불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