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 아포리아
- 조회 수 893
발표일 | 2020-04-20 |
---|
“바이러스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마냥 수긍하기는 힘들어서 대체 무슨 의도에서 나온 말인지 찾아봤다. 알고 보니, 계급적 위치 가리지 않고 감염 위험이 있으니 괜한 상대적 박탈감을 갖지 말라는 뜻이고, 지역과 국가를 막론하고 퍼져 있으니 괜히 아시아인 차별 말고 ‘한배를 탔다’는 인식을 가지라는 뜻이다. 대강의 취지는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그것도 거의 절대적으로.
이런 말들은 이번 사태의 위험성이 모든 이에게 마치 평등하게 나타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지만 수사는 수사일 뿐 그 자체가 진실이 될 수는 없다. 바이러스 앞에서,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사태 앞에서 우리는 정말 평등할까? 단적으로, ‘꼰대 제거제’(boomer remover)라는 불쾌한 농담이 퍼질 정도로 연령과 건강 상태에 따라 증환은 차별적으로 나타난다. 바이러스가 모든 인체에 평등하게 침투할 수는 있겠으나, 바이러스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명제는 원칙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시각을 좀 더 넓혀보자. 에볼라 바이러스 때와 비교하자면, 전염병 앞에서 모두가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은 위선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적어도 그때만 해도 우리는 인류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배’를 탔다는 인식이 지나칠 정도로 확산되는 감이 있다. 물론 보건 위기가 지구적으로 ‘고르게’ 확산되기는 했지만, 우리는 바이러스 문제를 ‘불평등’ 문제와 더 많이 연결시켜야 한다. 어떤 격언처럼 진짜 도둑은 위기 때야말로 활개를 치고 커다란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대로라면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불평등을 교정하기는커녕 격차를 더 크게 벌릴 것이다. 미국 셰일가스 업체의 위기와 월가의 도미노 공포는 흡사 2008년의 금융위기를 연상케 한다. 지금도 대마불사론을 등에 업고 금융권 공적 자금 투입, 금리 인하, 양적 완화 등이 고려·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두산중공업이 1조원 대출 지원을 받았고, 부실대기업 및 부실채권으로 인한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공적 자금은 물론 양적 완화도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찍어내고 풀린 돈이 서민들 수중에 들어간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을 것 같다. 2008년에도 미국을 필두로 한 재정적 조처가 결과적으로 지구적 불평등을 심화시킨 바 있다. 오죽하면 금융 쿠데타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물론 이번에는 긴급재난지원금이 투입된다지만 이것이 서민들의 ‘생존회로’ 속에서 얼마나 오래 돌고 또 얼마나 크게 불어날지는 불투명하다. 그 대신 이를 훨씬 뛰어넘을 규모가 ‘상층회로’에서 돌게 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걱정이다.
귀결은 비교적 자명하다. 자금 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이미 그러하듯 자구책 증명을 위해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임직원의 복리후생 지출을 줄일 것이다. 그렇게 경영권은 방어되겠지만 노동자들의 사회적 권리는 더욱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들 대다수가 다다를 곳은 자영업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유동성 과잉으로 자산가격과 지대가 상승함으로써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2008년 이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가시화됐던 것처럼, 우리들의 삶은 더욱더 벼랑 끝으로 내몰릴 공산이 크다.
모두의 바람대로 이번 위기도 잘 넘길지 모른다. 하지만 당면한 위기를 유예한다고 자축하는 동안 다음에 올 더 큰 위기의 씨앗도 뿌리를 내리려 할 것이다. 결국 해답은 하나뿐이다. 정부의 조처가 온전히 시민들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과 야당 그리고 청와대가 이번 선거를 통해 시민중심적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읽어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