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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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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일 | 2020-0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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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시국이다. 정상적인 시스템이 중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금융권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 시민들의 자유로운 이동 금지 등이 별다른 제동 없이 검토·진행되고 있다. 전염병 자체만으로도 끔찍하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효과 역시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1순위 걱정은 무엇보다도 경제일 것이다. 20세기 말 외환위기보다 심각한 불황이 점쳐지고 있다. 주식시장은 폭락과 대처를 반복하고 있고, 부동산시장은 급매물이 쏟아지리라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종차별이 문제시된다. 한국인들이 조롱과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뉴스가 보도된다. 그런가 하면 우리 안에서는 중국과 신천지에 대한 인종주의적 멸시가 감지된다.
물론 우리는 지금의 위기를 잘 헤쳐나갈 것이다. 그 어떤 위기에도 굴복하지 않는 저력과 그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돌발 상황, 시행착오 등이 반복되겠지만 인내와 노력을 다하면 질곡의 시간도 곧 끝이 나리라 믿는다. 물론 단서 조항은 있다. 문제적 사실을 인지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한에서만 우리는 우리의 저력을 믿어야 한다.
어떤 병환은 무증상으로 존재하기에 무섭다. 자가격리자와 확진자의 동선이 낱낱이 공개되고 이른바 슈퍼전파자에 대한 경계가 거듭될수록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게 된다. 감염 경로가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것은 카드 사용 명세나 위치 정보 등을 통해 우리의 동선이 수집되고 활용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상시국이라 하지만 우리들의 기본권이 이처럼 억제되는 문제는 왜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일까. 한국과 비교되는 중국과 독일의 경우를 보자. 중국은 초기의 불투명한 대처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어쨌든 국가권력의 정보 수집과 그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를 통해 감염의 확산을 (어떤 식으로든) 제어하는 것이 가능했다. 반면 독일은 높은 의료 수준을 갖고 있음에도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강력한 법률 체계 때문에 감염 경로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개인정보의 수집과 활용, 즉 기본권의 유예가 방역의 기초를 이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정보인권의 유예라는 증상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규모 감염 사태를 통해 시민들은 자신의 기본권 유예를 기꺼이 감내하는 모습이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이나 위치정보기술 같은 것이 사생활과 개인정보의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요즘 같은 예외적 시국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회적 안전장치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문제다. 신체적 안전과 사생활 보호라는 쟁점은 양립 불가능한 모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합리적인 해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까. 그러나 해법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이런 논점이 사회적으로 ‘탈쟁론화’된다는 사실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비상 시국에서의 기본권 억제가 지구적인 상식으로 자리 잡힐 수 있고, 더욱이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이제부터는 정보인권의 유예 자체가 당연한 상식처럼 통용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상찬받는다는 소식은 지속적으로 타전되고 있다. 어쩌면 이번 위기 관리의 귀결에 따라, 서구에서 기원했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시스템은 한국적인 통제된 민주주의의 형식으로 헤게모니를 넘겨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른바 ‘국뽕’이나 ‘민중뽕’에 고무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같은 자랑스러움의 이면에서 억제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경제위기나 인종주의 말고도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나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