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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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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일 | 2020-0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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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다 동거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요리사가 사업가가 되고, 사업가는 선생이 되는 세상인가 봐.” 백종원의 맹활약(?)은 어딘가 진기한 구석이 있다. <골목식당>을 보면 먹방과 쿡방에 더해 사업 상담과 심지어 멘토링까지 더해진 융합콘텐츠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등장하는 일반인들에게 희로애락을 품기도 하지만, 궁극에는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먹어야 하는지, 장사를 하려면 어떤 수완과 태도가 필요한지를 꼼꼼히 챙겨보게 된다.
#2. 얼마 전에는 강형욱도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으로 지상파 프로그램의 중심 자리를 꿰찼다. 그와 관련해서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반려견 행동교정 전문가라는 직함이기는 하지만, 정작 그의 솔루션은 보호자 행동교정에 가깝더라는 것. 그를 유명하게 한 프로그램 제목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빗대자면 결론은 언제나 ‘세상에 나쁜 견주만 있다’가 된다.
이 두 사람을 향한 대중적 호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우리는 이들 요리연구자이자 사업가로부터 그리고 반려견 행동교정 전문가로부터 특정한 ‘기술’들을 어깨너머 배우듯 터득해간다. 그렇지만 백종원과 강형욱이 특별한 것은 기술 이상의 어떤 것을 전달해준다는 데 있다. 이들을 통해 그리고 이들에 대한 대중적 존중을 통해 우리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단서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어떻게 맛있게 만들고 먹을 것인가’와 ‘반려동물과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 같은 문제가 매우 중요해졌다. 이들의 전문 분야는 오늘날 대중적 생활양식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 시대의 표상으로서 ‘백종원’은 오늘날 인간의 감각이 미각에 집중되어 있음을, 그리고 노동의 미래는 자영업에 있음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강형욱’은 오늘날 인간의 친밀한 관계가 반려동물을 통해 가능하며 따라서 가족의 미래에 비인간과의 관계를 포함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면서 이들이 자의반 타의반 ‘선생’의 자리에 터 잡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이것은 좀 역설적이다. 백종원과 강형욱은 숱한 인플루언서들처럼 생활의 기술 같은 ‘실용적 지식’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에게서 그 이상의 깨달음을 얻을 때도 있다. 비즈니스와 반려생활에 ‘진정성’을 다하는 태도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가격을 너무 내리면 젊은 창업자들의 귀감이 되지 못한다”, “우리 애를 아껴준다는 생각에 사람들을 다치게 해선 절대 안 된다” 등등. 암암리에 우리는 그들에게서 바로 새로운 윤리를 익히곤 한다. 괜히 ‘백선생’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제자를 데리고 다니는 설정을 했겠는가.
요점은 솜씨와 태도, 즉 실용성과 진정성의 융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이 둘을 갖춘 전문가들에게 찬사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디 먹거리와 자영업, 반려생활 분야뿐일까. 성공한 셰프와 ‘개통령’이 아니더라도 우리 시대 최대치의 고민거리로서 ‘안락’에 관계된 분야라면 선생의 자리는 언제 어디서든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득 서글프기도 하다. 왜 비실용 분야에서는 좀처럼 ‘선생’이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지식인이나 정치가가 제구실을 못 해서일까. 아니면 제대로 된 뜻을 품지 못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뜻을 품어도 대중들에게 가닿지 않아서일까. 하긴 이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보는 의견도 충분히 있을 것 같다. 지식인 대신 연구자, 정치가 대신 정치인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괜한 자의식이기만 할까. 세상에는 생활지식 전문가들이 선사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인식틀과 깨달음 역시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