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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일 2018-10-15

이른바 ‘가짜뉴스’로 고민들 해봤을 것이다. 태극기 집회, 유튜브…. 여기저기서 별별 이야기들이 오르내린다. 대통령에게 막대한 양의 금괴가 있다는 낭설에서부터 입에는 담기조차 어려운 수준의 음담패설에 이르기까지. 어디 그뿐일까. 동성애, 난민, 이슬람 혐오 등등 내용도 다양하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 역시 주변의 친한 어른들로부터 가짜뉴스로부터 시작했을 허위사실을 듣고 여러모로 놀라고 있다. ‘어떻게 저런 이야기들을 별다른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지? 대체 누가 만든 이야기인 거지? 그나저나 그들의 소셜 미디어 생태계란 이런 것이구나!’ 최근 폭로되고 있듯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가짜뉴스는 몇몇 세력의 공작으로 생산되고, 이를 소망하는 일부 대중의 확증편향에 의해 소비 및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그들이 만족할 만한 정권을 창출하지 않는 한 이와 같은 ‘시민사회적’(?) 움직임은 그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식의 허위사실 유포는 공론장을 어지럽히고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 게다가 정말로 거짓말에 넘어가는 사람이 많아져서 다시금 적폐를 걱정해야 하는 날이 온다면? 상상만 해도 피곤하고 정신이 아찔하다. 사정이 이런 이상 가짜뉴스를 뿌리 뽑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실제로 가짜뉴스의 경로를 파헤치고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는 정책적 수요도 점점 커지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주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뿌리를 뽑는 게 가능할까? 아니, 가당키나 한 일일까?’ 유언비어란 때때로 민중적 ‘봉기’를 가능하게 해주는 더없는 수사적 장치가 되기도 한다. 단적으로 지금의 정부야말로 각종 ‘사건’들을 통해 만들어진 정부 아닌가?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머리에 구멍이 날지 모른다는 공포에 거리로 나섰다. 최씨 일가의 술법에 당시 대통령의 정신과 신체가 지배당한다는 어이상실에 광장에 모이기도 했다. 우리가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이유 중 허위사실 따위는 전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빨간 가짜뉴스가 아닐까?

 

 

결국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된다. 허위사실이란 건 권력의 입장에선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혹세무민을 막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위력을 동원하거나 한다면, 그것은 현재의 권력이 그만큼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마도 둘 중 하나일 텐데, 허위사실이 허위가 아니라 진실이거나, 아니면 허위라 하더라도 단순히 뒷짐 지고 볼 수만은 없을 정도로 권력 유지에 자신감이 없어서거나. 물론 지금의 상황은 심각하진 않지만, 후자 쪽의 문제인 것 같다. 적잖은 사람들이 허위사실에 현혹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우리 주변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불행히도 가짜뉴스 근절은 요원할 공산이 크다. 소셜 미디어의 특성상 생산의 출처가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어쩌다 하나둘 잡아낸다 하더라도 제2, 제3의 생산자가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재래의 ‘일망타진’ 따위의 상상력은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문제가 달라졌다면 해법도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일까. 그 옛날 ‘삐라’가 생각나기도 한다. 삐라가 사라진 건 (또는 최소한 드물어진 건) 북한이나 그 추종세력이 없어져서가 아니다. 맥락이야 어떻든 이제는 우리들 대다수가 그것을 믿지 않는 어떤 ‘시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디 자신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주지하듯, 대개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실체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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