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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일 2018-08-13

며칠 전 청소년 인문학 캠프가 있어서 문화사회연구소 동료들과 함께 특강을 다녀왔다. 물론 주최 쪽에서 만든 보도자료만큼 말끔한 자리만은 아니었다. 특강 직전부터 캠프 책임자가 언질을 주기도 했었다. “전반적으로 여학생들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남학생들은 기에 눌린 건지 어딘지 의기소침해요.” 사실 감수는 하고 있었다. 젠더/섹슈얼리티 같은 소재일수록 쟁점이 첨예해지고 논조도 격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4시간 가까이 되는 동안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그러다 특강 말미의 아찔한 충돌. “인권 이야기도 좋은데 너무 여성 인권이라든가 하는 부분에 치우친 게 아닌지….” 말꼬리를 흐린 발화자는 남성이었다. 다른 한쪽에 있던 여성 무리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발언 기회를 얻자마자 터졌다. “지금 취업률과 고용률 … 유리 천장 때문에….” 토론이 격해질 상황이었지만 정해진 시간 때문에라도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자리를 마무리해야 했다.

 

캠프에서 빠져나와 우리끼리 있을 때에는 10대 여성들이 말도 더 잘하고 생각도 바로 한다는 칭찬이 오갔다. 실제로 그런 것 같다. 목소리의 강도, 메시지 전달력, 이야기 구성력, 참여의 적극성 등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게다가 특강 선생님들조차 여성들 편에 가까워 ‘보이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논쟁을 해봤자 어지간한 10대 남성은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남학생의 뚱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혀 동의하지 않은 채 딴생각에 잠긴 그 표정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모르겠다. 나 역시 생물학적 남성이어서인지 구시대적 보편주의 윤리에 빠져 있어서인지, 여학생들 언변에 통쾌한 만큼이나 그의 표정에도 시선이 갔다. “아유, 그 정돈 괜찮아요”라는 동료들의 말과 상관없이 그에 대한 생각이 꽤 오래 머물렀다.

 

 

여전히 헤아리기 어렵지만 그런 식의 표정은 ‘나는 전혀 아닌데’라든가 ‘이건 좀 억울한데’ 같은 감정선 어디쯤에서 나왔던 것 같다. 어쩌면 요즘 10~20대 남성들에게 나타나는 흔한 감정이랄까. 적어도 이들의 10대 시절 동안은 아들보다 딸이 더 귀한 세상이고, 학력 수준은 여성이 더 높아서 각종 보상도 여성들한테 집중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성차별을 이야기하다니, 이건 어불성설 아닌가!

 

물론, 그들이 경험하는 세계가 딱 그만큼이라는 이야기다. 그 나이 때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남성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 외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줘야 할지 모른다. 또래 여성들이 어떤 성적 억압을 견디고 있는지, 나중에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들이 어떤 특권을 누리게 될지 등등.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 그리고 설득은 가능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이들을 진지한 설득의 대상으로조차 여기지 않고, 그들의 경험은 가짜 경험이어서 그에 근거한 세계관은 허위의식이라고 치부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때때로 합리적 대화라는 것 자체가 남성들의 문법이어서 절대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으니 그런 기대는 솔직히 헛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시민의 형성은 갈수록 지연되는 게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권력관계를 타고나는 배제와 혐오, 그리고 표적을 가리지 않는 적대. 우리 주변을 보면 사람을 시민이 아니라 괴물로 만드는 조건들이 즐비한 것만 같다. 뚱한 표정의 그가 앞으로 어떤 시민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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